말리 - 전통 결혼식
2017년 2월 16일
쎄구 근처 시골 마을의 결혼식을 보러 가기로 한 날 아침, 압둘라예와 빠뿌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그들은 오늘 결혼식 피로연의 여흥을 담당할 밴드의 일원이라 압둘라예는 삐삐 헤어스타일로 멋을 냈고 키가 큰 빠뿌는 전통옷을 차려입으니 더욱 훤칠해 보였다. 우리는 그들이 운전하는 스쿠터를 하나씩 타고 결혼식을 보러간다.
빨간 흙먼지 폴폴 날리는 마을 공터에 커다란 포장을 쳐놓고 의자를 빙 둘러놓았는데 먼저 온 밴드 단원들이 앰프와 스피커를 설치하고 있고 그 주변에 동네 조무래기들이 수 십 명 모여 와글와글 떠들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신랑집으로 들어가니 역시 포장을 쳐놓은 마당의 그늘 아래 전통 옷들을 차려입은 하객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부엌에서는 여러 군데 솥을 걸고 불을 때고 음식 준비에 한창이다.
좀 있으니 대문 쪽에서부터 시끌벅적하니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해 나가보니 아주머니 하나가 노래인 듯 아닌 듯 큰 소리로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귀를 쫑긋하고 듣고 있자 옆에 있던 누군가가 '그리오'라고 했다. 나중에 보니 그리오라고 일러준 그녀도 그리오였고 한 서너 명의 그리오 아주머니들이 같이 온 것이었다. 그녀들은 하객들과 적극적으로 인사를 나누고 다녔다.
잠시 후 화려한 전통옷을 차려 입은 중년의 남자가 나타나 하객들 중 특정인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면 듣고있던 사람이 돈을 주곤 했다. 말씀을 듣던 한 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리기도했다.
그제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남자 그리오였고 남자 그리오는 말로 축원덕담을 하고 여자 그리오들은 그것을 일정한 선율에 실어 하므로 노래처럼 들리는 것이다.
남녀 그리오들은 각자 사방에서 사람들에게 축원을 해주고 축원을 받은 당사자는 그리오에게 돈을 준다. 어떤 그리오는 사진 찍는 우리에게도 자꾸 돈을 달라해서 몇몇에겐 천 프랑 혹은 이천 프랑을 주기도 했다. 자세히 보니 오고가는 대부분의 돈은 빳빳한 500프랑 짜리다. 그래서 우리도 그 다음부터는 결혼식 가기 전에 500프랑 짜리를 잔뜩 준비했다.
그런데 축원을 받는 이들이 왜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그리오들은 축원을 할 때 저 멀리 조상부터 언급하며 당사자의 집안이 얼마나 훌륭한 집안인지 그 내력을 줄줄이 읊고, 그런 조상을 두었으니 잘 될 것이고, 또한 잘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격려와 고무를 한다고 한다. 고된 일상에 치여 왜 사는지도 모르고 하루하루 살다가 그런 얘기를 들으며 감정이 고양되어 눈물을 흘리고 꼬깃꼬깃 아껴두었던 돈을 선뜻 건네게 되는 것 아닐까. 눈물 흘리던 아주머니는 그들에겐 매우 큰 돈일 2000프랑(우리돈 사천원)을 건네는 것을 보았다.
한편, 신랑신부는 가족들만 참관하는 가운데 시청에서 공식적인 결혼식을 하고 12시쯤 집에 들러 그들이 살게 될 방인지 첫날 밤을 보내게 될 방인지 잘 꾸며놓은 방에 들어가서 우리는 볼 수 없었던 어떤 의식을 치르고 나와서는 종교 의례를 치르러 또 모스크에 갔다가 한참 후에 돌아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지 그 때부턴 신랑신부는 볼 수 없었고 오후 두 시 경부터 해가 꼴딱 넘어갈 때까지 피로연이 벌어졌다.
피로연 시작하기 전에 점심이 나왔는데 붉으레하게 양념을 한 밥 위에 고기 한두 덩어리와 피망 가지 양배추가 한 덩어리씩 얹힌 것을 커다란 플래스틱 다라이에 담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턱턱 던져 놓으면 우루루 모여들어 손으로 먹는다. 물론 손씻는 물을 따로 가져다 주는데 나는 외국인이라고 가장 먼저 손을 씻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피로연 타임이 되었다. 이제부턴 축원덕담하는 그리오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노래하고 음악하는 그리오가 주도권을 잡는다. 처음 20-30분간 누구나 나와서 춤을 추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밴드의 가수인 여자 그리오가 하객 중의 한 명 혹은 한 가족을 찍어 가운데 앉히고 축원덕담격인 노래를 불러준다. 그러면 친구나 가족들이 나와서 앉아 있는 사람에게 돈을 모아주고 노래의 후반부가 되면 춤 추고 싶은 사람들 모두 나와서 기차놀이 하듯 빙빙 돌며 춤을 추다가 마지막엔 받은 돈을 가수와 악사들에게 나누어 준다. 악사들이 받은 돈을 모자에 끼워 이마에 붙이기도 하고 침을 발라 이마에 붙이기도 하면 하객들은 깔깔거리고 웃으며 즐거워하고 악사들은 더욱 신이 나서 열정적으로 연주를 하는데 이런 패턴이 다섯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어도 하객들이나 악사들이나 지치는 기색이 없다.
밴드의 맴버는 유일한 선율악기 카말렌고니를 압둘라예가 연주하고 빠뿌는 쬐끄만 타악기 타마니를 겨드랑이에 끼고 연주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앞에 서서 분위기를 잡는 역할을 하는 듯했고 박을 엎어놓고 치는 꺌바스가 있었고 마지막으로 철제 의자와 플라스틱 통을 여러 개 조립해 만든, 아프리카에선 흔한 동네드럼이 있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보컬을 맡은 여자 그리오가 있고.
그 이후에도 여러 번 결혼식을 보았는데 동네마다 춤이나 음악이 다르고 돈을 주고 받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지만 오전에 시작해서 깜깜해질 때까지 하는 건 보통이고 밤새도록 계속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우리에겐 싸구려 앰프와 스피커 소리가 몹시 거슬렸지만 그들에겐 익숙한지 해가 넘어가고 나서 압둘라예가 마침내 자신의 악기에서 전원을 빼는 순간까지 별다른 이탈자 없이 끝까지 흥겹게 춤추고 노는 에너지들이 대단했다. 단 5분도 쉬지 않고 다섯 시간을 연주하고 노래한 악사들도 마찬가지고..
다섯 시간 동안 같은 곡도 더러 연주하는 듯하긴 했으나 하객들은 대부분의 곡을 다 알고 있거나 음악이 끝나기 전 약속된 신호가 있는지 매번 음악이 끝날 때 춤도 동시에 딱 멈추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이들의 결혼식은 우리 눈에는 보잘 것 없는 음식이지만 수 백 명 되는 온 동네 사람을 다 먹여야 하고 천막 치고 의자 임대하고 직계 가족 여자들은 애들까지 똑같은 옷을 해 입히고 신부의 친구들 수 십 명에게도 똑같은 옷을 해 입혀야 하니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행사이다. 자녀 결혼시키다가 망하는 집들도 있다 한다.
피로연은 전적으로 악사들의 능력에 달린 듯, 대부분 그리오인 가수가 분위기를 잘 띄우고 악사들이 연주를 잘 하면 그만큼 팁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구조라서 열정적으로 연주할 수밖에 없고, 동네 사람들은 오랫만에 얻어먹고 춤을 추고 그리오들로부터 덕담도 듣는 기회이며, 아이들은 모처럼 너그러워진 엄마가 주는 푼돈으로 주전부리를 할 수 있는 기회이며, 혼주들은 길다면 긴 혼례 일정이 다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즐기는 마지막 행사이므로 모든 구성원들이 그렇게 흥겹게 놀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