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여행을 떠나며

[노마드의 삶1]

Melomane 2019. 8. 5. 16:50

@포르투갈 포르뚜

2017.1.31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냉장고를 채워야 맘이 편한 사람과 비워야 맘이 편한 사람. 

나는 냉장고에 공간이 넉넉해야 맘이 편해지는 사람이다. 냉장고 뿐 아니라 옷장이나 책장도 주기적으로 솎아내서 공간을 확보한다. 나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노마드의 피가 흐를 가능성이 높다. 늘 이동해야 하는 노마드에겐 생존에 필요한 것 이상의 가재도구란 그저 짐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거 안 믿는 이들도 많지만 나는 태어난 년월일시 네 개가 각각 상징하는 것, 즉 사주를 따져보면 역마살이 두 개나 들어 있다. 타고난 노마드인 셈이다. 경상도 사람 중엔 흉노족이 많았다는데 내게도 그들의 피가 흐르는 것일까? 

어려서부터 어디론가 가는 걸 좋아해서 초등학생 시절에도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두어 시간 달려야 닿는 시골 친척집에 혼자 가서 며칠씩 지내다 오기도 했다. 당연히 짐가방도 내가 알아서 싸곤 했는데 지금처럼 물자가 흔치 않던 70년대의 초등학생도 며칠 떠나는 여행짐을 싸려고 보면 어찌나 가진 게 많던지.

배낭여행의 미덕은 참으로 많지만 버리고 비우는 것의 기쁨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여행 중에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나에게 짐이 되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행복해 지는 삶. 그것이 노마드의 삶이다. 

첫 장기 여행에 70리터 배낭을 메고 갔다. 다음번 배낭은 55리터였다. 이번에는 45리터 배낭이다. 그럼에도 바지 세 개, 셔츠 다섯 개와 속옷, 여분의 신발, 세면도구 등을 다 넣었는데도 갈 때 입고갈 스웨터와 방한복을 벗어 넣을 자리도 남겨두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패셔니스타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배낭에 담아갈 옷을 고르는 기준에 패션 따위는 3위 안에도 못 든다. 첫번째 조건이 기능, 두번째는 가벼운 것, 세번째는 건조가 빠른 것이다. 패션은 네번째로 꼽히지도 못한다. 네번째 조건은 잃어버려도 크게 아깝지 않을 저렴한 것이어야 한다. 배낭 안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합해도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하나의 가격에도 못 미칠 정도로. 

일년의 절반 정도를 여행자로 살다보니 정착인으로 살면서 사용하는 물건들도 꼭 필요한 소모품 외에는 안 사고, 사더라도 고르는 기준이 바뀌었다. 지금 가진 것으로도 다 못 쓰고 죽을 것이 분명한데 더 보탤 이유가 없다.

어디로 떠나는지는 [노마드의 삶2]에서 얘기할테니 묻지 마시길..

참, 
냉장고가 그득해야 맘이 놓인다는 분들,
그대들은 장기배낭여행은 안 맞는 체질이니 다른 취미를 찾아보시길.. ㅎㅎ

*사진은 5 년 전 인도 북부 라다크에서 스리나가르로 넘어가는 고갯길 어디선가 찍은 사진인데 라다크에서 산 사천원짜리 이 셔츠가 이후 내 배낭에 첫번째로 들어가는 아이템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