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아프리카 - 세네갈

세네갈 - 우수이 / 마마아프리카

Melomane 2019. 8. 8. 02:04

2017년 3월

세네갈의 마마아프리카



마마아프리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에 저항했던 저 유명한 가수 미리암 마케바의 애칭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불린 이유는 저항 가수여서가 아니라 고아들을 보살피는 선행을 행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도시 우쑤이에도 마마아프리카가 살고 있다. 바로 이브라의 어머니 파뚜마따 여사이다. 

이브라는 우리가 우쑤이에 가기 전날 묵게된 다카르의 게스트하우스 집사인데 마침 우쑤이 출신이어서 우리는 그의 고향집 가족들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우쑤이의 마마아프리카 파뚜마따 여사는 우쑤이 인근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녀는 마을의 큰 행사가 있는 날이면 언제나 부엌에서 궂은 일을 도맡고, 가난하지만 이웃의 고아들을 보살피며 베풀고 살면서도 늘 웃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우쑤이의 마마아프리카의 집은 우리 게스트하우스에서 읍내쪽으로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어서 우리는 읍내 나가며 들오며 그녀의 집을 내집처럼 드나들었는데 그 집 마당의 커다란 망고나무 아래에는 언제나 마마네 자식들과 그들의 친구들, 동네 젊은이들이 버글버글 모여 얘기도 하고 카드놀이도 하고 머리도 땋고 음악도 듣는 공간이다. 

마마아프리카네 집 망고나무

마마의 자녀 10남매 중 다섯은 외지에 나가 살고 있고 나머지 다섯 남매가 그 집에 살거나 인근에 살고 있어 수시로 드나들며 그들의 어린 자녀들까지 늘 거기 와서 놀기 때문에 그 집 마당엔 많을 때는 청년 열댓 명과 꼬마들 열댓 명이 어우러져 논다. 

그러다가 밥 때가 되면 커다란 그릇애 뭐라도 먹을 것을 내오는데 배고픈 사람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달려들어 같이 먹는다. 우리도 여러번 같이 먹었는데 밥을 금방 먹어서 배가 안 고프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기어코 한숟갈이라도 뜨게 만든다. 

마마가 일 나갔다 가져온 찌에부디엔을 망고나무 아래 멤버들이 모두 함께 먹고 있다.


마마는 우쑤이 인근 마을에 결혼식 장례식 세례식 등 큰 일이 있을 때 커다란 솥과 그릇 등을 싣고 가서 부엌일을 총괄하는 일을 의뢰받아 수행하는, 말하자면 출장요리사의 일을 한다. 그 일을 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냐고 물었더니 돈을 주면 받고 안 주면 못 받으므로 큰 돈은 못 번다고 한다. 대신 행사 치르고 남은 음식을 가져오는데 마마가 일 나갔다 오는 날이면 고기가 들어있는 찌에부디엔이나 꾸스꾸스를 맛볼 수 있다. 

사실 우리에게 마마네의 존재는 밥을 얻어먹는 의미 그 이상이었다. 그 곳에 가면 인근 마을의 잔치나 초상집에 관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망고나무 아래 모이는 멤버 중에는 지역 라디오 방송 리포터겸 진행자도 있는데 그는 마을의 행사를 영상으로 찍어놓은 자료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마와 함께 사는 아들은 모두 셋인데 큰 아들 뽀는 7년 전까지 우리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의 직원이었다는데 지금은 집안에서 텃밭을 일구고 양을 치며 이슬람 수피 수도자처럼 홀로 살고 있고 압둘과 막내 이부 역시 서른 둘, 스물 일곱의 청년이지만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아 바쁜 마마를 대신해서 집안 살림은 막내딸이 도맡아서 한다. 그래서 형제자매들은 물론이고 그 집에 드나드는 모든 이들은 그 막내딸을 마마라고 부른다. 내가 마마를 찾으면 모두들 큰 마마를 찾는지 작은 마마를 찾는지 되묻는다. 

마마네 망고나무 아래서는 모든 것을 서로 나눈다. 밥도 나누고 차도 나누고 술도 나누고 담배도 나눈다. 이렇게 나누는 풍습은 이 지역 사람들의 특징이지만 마마네의 나눔은 좀 더 특별한 데가 있다. 

다카르에 사는 이브라까지 이 집 아들들은 모두 레게머리를 하고 있는데 그냥 멋으로만 한 게 아니라 밥 말리의 정신을 추종하고 있고 무슬림 수피즘의 일종인 무리데의 일원이다. 무리데는 세속적인 성공보다는 유목과 농사를 지으며 자연을 벗삼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큰 아들 뽀는 뒷채 마당에다 농사를 짓고 양을 치고 압둘과 이부는 집에서 500m 쯤 떨어진 곳에 지인이 무상 임대해 준 땅에 텃밭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있다 

압둘은 밤에는 읍내 클럽에서 밤 11시부터 새벽6시까지 바텐더 일을 하고 오후에 텃밭에 나가 일을 하는데 어느 날 도시에서 마사지샵을 운영하는 손위 누나가 일자리를 찾았다며 데리고 갔다. 압둘과 가장 가까운 막내 이부는 아마 2-3일 내로 다시 돌아올테니 두고봐 하더니 아니나다를까 사흘째 되던 날 압둘은 되돌아왔다. 우리는 모두 격하게 그의 귀환을 환영했다. 

우리가 떠나기 이틀 전, 이부는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만 요리해서 저녁을 대접하겠다며 장작불을 지펴 요리하여 텃밭의 작은 나무그늘 아래서 샐러드와 가지볶음으로 만찬을 즐겼는데 마마는 우리가 떠나기 전날 저녁 땅콩을 갈아넣은 소스덮밥 다힘을 만들어 은식기에 내와서 망고나무 아래에서 나누어 먹었다.

마마네 가족이 내내 이렇게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이들 사회가 너무 급격하게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망고나무 아래에선 개들도 평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