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타니의 음악
2017년 3월
모리타니인들의 유별난 자긍심의 원천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음악과 문학일 것이다.
오래 전부터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면 그들이 어떤 음악을 항유하는지 주의깊게 살피고 다니는데, 젊은이들조차 전통음악을 즐겨듣는 나라는, 내가 가본 나라 중에는 모리타니가 유일할 듯하다. 티브이에서도 전통음악만 들을 수 있고 택시나 버스 기사들도 언제나 전통음악을 듣고 있다.
결혼식에 가면 소리꾼 주변에는 녹음하려는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들어 전화기를 들이댄다. 젊은이들은 웬만하면 USB에 자기가 녹음했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담아 갖고다니고,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스맛폰이나 핸드폰에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가지고 다니며 듣는다.
모두들 음악을 좋아하니 노래 잘 하는 사람도 많고 장단 잘 치는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인근 마을에 소문난 소리꾼이 있으면 초빙하기도 하는데 이들 중에는 반 프로들도 있지만 아마추어들도 많다.
지난 말리편에서 그리오라는 세습되는 예능집단을 소개했었는데, 모리타니 남부에도 그리오가 있다. 우리는 중북부 지역만 다녀서 의례현장에서 연주하는 그리오를 보지는 못했으나, 방송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가수나 연주자는 그리오 출신들이었다. 가만히 보면 서아프리카의 그리오문화권 나라들 가운데서는 모리타니의 그리오들이 가장 높은 지위를 누리는 것으로 보인다.
유명한 그리오 가문들은 대부분 수도인 누악쇼트로 이사갔다고 하는데, 세도가들이 모두 누악쇼트에 살고 있으니 수입 짭잘한 행사가 다 거기서 벌어지고, 방송 출연이나 해외공연을 하려 해도 그곳에 사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다닌 지역에서는 그리오는 아니지만 그리오 못지않게 노래 잘하는 아마추어 가수들을 많이 보았다. 이들은 대부분 타고난 카랑카랑한 목청으로 때로는 리듬 없이 즉흥으로, 때로는 어깨춤이 절로 나는 리듬에 맞추어 유려한 선율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행사 피로연에는 본즈라고 하는 춤추기 좋은 음악을 많이 연주하는데 결코 경박하지 않고, 여자들의 신세타령이나 사랑노래 같은 것들도 리듬이 촐싹맞지 않고 선율에 깊이가 있다.
종교음악은 세네갈에서는 지크르 음악이 대세였다면 모리타니에는 '메데흐'라는 음악이 대유행이어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저녁에 어느 집엔가에 모여 같이 노래를 부른다. 지크르는 신을 찬양하는 노래인 반면 메데흐는 예언자 모하메드를 찬양하는 노래라고 한다.
한편, 아랍문화권이 대부분 그렇지만 모리타니 사람들은 유난히 시 쓰기와 시 낭송을 즐긴다. 젊은이들도 즉석에서 시를 지어 서로 주고받으며 즐길 줄 알고, 티브이를 틀면 수시로 시인들이 나와 시를 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생활 속에서도 시를 주고받는데, 예를 들면 다히의 이모가 삼촌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갚기로 한 날짜에 갚지 않자 독촉하는 내용을 시로 써서 보내면, 삼촌 또한 돈을 갚지 못하는 사연을 시로 써서 보내고, 이렇게 서너번씩 시가 왔다갔다 하는 것을 다히가 전화로 중개를 해주었다며 그 시를 줄줄 외고 있었다.
예전 우리의 시조도 그랬고 모든 시가 운율을 맞추어 쓰는 것이었듯 시낭송을 하면 운율이 딱딱 맞아 한편의 음악을 듣는 것같다. 나는 아랍어를 전혀 모르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아랍어는 시를 쓰고 읽기에 좋은 운율이 내재된 언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음악을 녹음해 갖고 다니며 듣는 것처럼 시를 녹음해 갖고 다니며 듣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가 하면 유명한 시인들이 시를 읊을 때는 전통 현악기 티디닛으로 반주를 하는데, 즉흥에 가까운 연주는 섬세하고 화려하여 시낭송이 노래처럼 들린다. 시낭송을 이처럼 즐기다 보니 재작년부터 열리는 두 번의 범아랍권 국가 대항 아랍어 시낭송 대회에서 모리타니 사람들이 상위권을 휩쓸기에 이르렀다.
이런저런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신심도 깊은데다가 시를 숭상하는 풍토가 있고 음악도 철학적이고 깊이가 있는 걸 보면, 아라비아 반도에서 사하라 남쪽을 거쳐 여기까지 건너왔다는 모리타니인들의 조상은 아마도 신앙생활을 하기 좋은 땅을 찾아 유랑을 시도한 수도승들이거나 음유시인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모리타니 그리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들이 부르는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eItER27Wggo
이 영상은 모리타니아의 국민가수 디미민트아바와 그녀의 남편 할리파의 노래다. 그녀는 모리타니아의 대표적인 그리오 가문 출신 가수로, 그녀의 아버지는 모리타니 국가를 작곡했고 그녀의 삼촌, 남편들, 오빠와 여동생, 자녀들 대부분이 음악을 한다. 2011년 그녀가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 공연하러 갔다 사망했다는 소식에 전 국민들이 애도를 표했고 대통령이 전용기를 보내 운구를 했다는 전설적인 국민가수다. 나는 운좋게도 2010년 파리에서 그녀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이 곡에서는 전반부에 디미민트아바 못지 않게 전설적인 가수인 할리파의 티디닛 연주와 노래, 후반부에는 디미민트아바의 목소리와 이들 음악에 빠지지 않는 손뼉 장단의 매력을 느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