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 - 도시의 빈민이 된 투아레그(Touareg)
2017년 2월 7일
투아레그(Touareg)족은 사하라사막에 아주 넓게 흩어져 유목을 하거나 캐러밴 무역을 하던 베르베르족이다. 말리 북동부에 사는 투아레그들의 중심 도시가 바로 팀북투이다.
투아레그와 팀북투, 이 이름들 왠지 멋있지 않은가? 이 이름을 멋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나 뿐은 아니었던지 그들 언어로 자유인이란 뜻인 투아레그는 폭스바겐에서 생산하는 SUV의 이름으로 쓰인다. 또 팀북투는 영화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데 여주인공이 파트너에게 세상 끝까지 갈 것이냐는 뜻으로 "팀북투까지 갈 작정이냐?"고 묻는 장면이 있었다. 그 정도로 가기에 멀고 힘든 곳이지만 투아레그들의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어서 말리 관광의 핵심 지역이었는데 5-6년 전부터 알카에다 세력도 흘러들어왔다고 하고 최근엔 IS도 섞여들어왔다고 하니 우리는 얼씬도 할 수 없는 지역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 투아레그족들의 음악이 기가 막히게 좋다. 전통악기만으로 이루어진 밴드와 전기기타 등을 쓰는 밴드들이 월드스타가 된 팀들이 여럿 있다.
앞선 포스팅에서 소개한 알리파르카뚜레와 아펠보쿰도 팀북투에서 멀지 않은 니아푼케 출신이라 팀북투에서는 십 수 년 전부터 매년 1월 초에 사막에다 가설무대를 세우고 개최하는 데저트페스티벌이 성황이었다. 우리는 2011년 이 페스티벌을 보려고 여행계획을 다 세워두었는데 그 때 이미 주변 상황이 위험해지고 있다는 소식에 계획을 접은 일이 있다. 나중에 그 페스티벌이 예정대로 개최되었다는 소식에 어찌나 안타깝던지. 그 페스티벌은 2013년인가까지 개최되다가 이후로는 바마코와 세구 등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서 나누어 개최하고 있는데 사막에서 하는 페스티벌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고 한다.
투아레그와 팀북투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오늘 소개할 뮤지션들이 팀북투 출신 투아레그들이기 때문이다.
바마코의 Acte-Sept에 투아레그 전통 옷을 폼나게 차려입은 마하마네 시디디코(Mahamane Sidi Dicko)아저씨가 오셨다. 우리는 Tiny Library Concert를 위해 서재로 모시고 들어갔는데 아뿔싸 아저씨가 그냥 인터뷰만 하는 줄 알고 악기를 안 가져오셨다는 것이다. 이를 어쩌나!!
그는 바마코 외곽에 사는데 집에 가서 악기를 가지고 오후에 다시 오겠다며 기다리라고 하는 걸 우리는 그가 사는 마을도 볼 겸 우리랑 같이 가서 집에서 연주하면 어떻겠느냐 제안해서 그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차도 없고 오토바이도 없어서 대중교통을 여러번 갈아타고 왔더란다. 우리도 그렇게 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는데 지나가던 택시 하나가 그를 알아보고 차를 세웠다. 그는 스타연주자는 아니지만 간간히 무대에 서는지라 눈밝은 기사가 그를 알아본 것이다. 그가 상황을 설명하자 5천프랑에 그의 집까지 가는 것으로 협상이 되었다. 가다보니 대절택시로 가는데도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거리였는데 오전 열 시까지 오느라 그는 아침잠을 설치고 나섰을 것이다.
그의 집은 바마코 변두리에 새로 조성된 아주 가난한 마을이었는데 수도도 우물도 없어서 물을 길어다 먹어야 하는 집이었다. 그는 10대 초반이던 70년대에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 요리사로 일하기도 하고 밴드에서 가수를 하기도 하다가 바마코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그의 직계 가족들은 80년대 초반에 도시로 나왔으며 2000년대 초반에는 온 일가친척들이 아이보리코스트로 이주했다고 한다.
천 년 이상 (어쩌면 수 천 년 동안) 사막에서 나름의 질서 속에 평화롭게 살아오던 이들 민족이 고향땅을 떠나 디아스포라 대열에 합류하게 된 연유를 캐자면 19세기 프랑스가 북아프리카 지역을 식민지화 할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프랑스가 침략했을 때 투아레그족들이 가장 격렬하게 저항을 하여 양측이 수 천명의 사상자를 내는 전투를 여러번 치루어야 해서 프랑스에겐 늘 골치거리였다고 한다. 그러다 1960년대에 프랑스 식민지로 있던, 사하라 사막에 한 발을 걸친 나라들(니제르 말리 알제리 리비아 부르키나파소)과 프랑스가 독립협상을 하면서 사하라에 흩어져 사는 투아레그들은 고려하지 않고 국경선을 자신들의 편의대로 그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마도 프랑스에 가장 적대적이었던 투아레그의 편의는 조금도 봐주고 싶지 않았던 프랑스의 속내가 숨어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그들이 깃들어 살던 오아시스는 점점 줄어드는데 인구는 자꾸 늘어나서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게 되니 공동체가 와해되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저항적이던 말리 북동부 투아레그들의 저항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말리 정부는 매우 강하게 억압을 했고 급기야 악에받친 극단주의자들이 발호하게 된 것이다.
흙벽돌에 함석으로 지붕을 덮은 방 두 칸짜리 마하마네의 집에는 자신의 가족 여덟 명과 몸이 아픈 동생네 가족 여섯까지 열네 명의 식구들이 살고 있었다. 가난하지만 여인들은 씩씩하고 명랑했고 아이들은 밝고 예의밝았다.
마침 밥 때가 되어 상을 차려 왔는데 건더기라곤 피망 한 개가 전부인 검푸른 소스와 밥을 세숫대야 같은 그릇에 담아 내왔다. 평소 못 먹는 것 빼곤 다 먹을 수 있는 식성을 자랑했지만 솔직히 이 밥만은 목구멍으로 넘기기 힘들어 대여섯 술 뜨고는 배가 안 고프다 하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유목민인 이들은 고향 팀북투에서는 밥이 아니라 빵을 먹을 것 같아 물어보았더니 밀가루가 비싸서 빵을 못 해먹는단다. 그리고 가축도 없고 그들을 풀어멕일 땅도 없으니 고향에서 먹던 우유나 버터도 없을 터이다.
마하마네는 은자르카 연주자이며 바가지 엎어놓은 타악기 깔바스를 연주하며 노래도 부르는 가수다. 물론 자작곡에 가사도 쓰는 아티스트이고. 우리는 마당 한 켠에 벽돌로 담을 막고 차양을 치고 간이 의자를 몇 개 놓은, 소위 응접실에 자리를 잡고 그의 은자르카 연주를 청해 들었다.
노래도 한 자락 해보시라 했더니 노래는 제대로 된 현악기 반주자가 필요하다며 다음날 Acte-Sept에 반주자와 함께 다시 오겠다 하여 그러시라고 했다. 그가 투아레그 동료들과 함께 펼친 Tiny Library Concert 소식은 다음 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