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일
한국에는 대사관이 없어 받지 못한 말리 비자도 받을 겸 비행기도 갈아타야해서 어제 저녁 빠리에 왔다. 겨우 사흘 묵게 될 예정이라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는 바로 공연을 보러 나섰다.
빠리에서 해볼만한 수많은 일들 중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연장 순례 하는 것만큼 가성비 높은 일도 없을 것이다.
빠리는 한 군데 앉아서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도시가 아닐까 싶다. 유럽의 다른 대도시들도 제3세계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은 많지만 대부분 지방분권이 확실한 나라들이라 다양한 공연을 보려면 이 도시 저 도시 다녀야 하지만 정치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중앙집권적인 프랑스만은 거의 모든 공연이 빠리를 거쳐간다.
제3세계 공연을 올리는 빠리의 수많은 공연장 가운데 알함브라극장은 내가 빠리에 살던 시절 가장 즐겨찾던 극장이다. 어제가 오필데부아 (Au fil des voix) 축제 마지막 공연이 열리는 날이라 부지런히 달려갔다.
비행기 도착 시간이란게 늘 변수가 있는 것이라 사전 예약을 해놓지 않아서 현장구매를 하려고 티켓부스로 바로 갔다. 표를 사려는데 이름을 묻기에 마담신이라고만 했는데 신경아냐고 해서 깜짝 놀랐다. 자주 오긴 했지만 무려 7년만에 왔는데도 아직 내 이름이 그들의 리스트에 등록되어 있다니...
그런데 잠깐, 온라인 구매도 아닌 현장 구매를 하는데 왜 이름을 물어볼까 잠시 의아했다. 작년이던가 재작년이던가 바따끌랑극장에서 끔찍한 폭탄테러가 일어난 이후로 현장 구매 고객도 이름을 등록해야 한단다. 사고가 나면 누가 죽었는지 확인을 하려면 이름이 필요하겠다 생각하니 잠시 오싹해졌다. 공연장 입구에서도 경찰들이 상의 자켓을 열어보게 해서 무기가 없는지 검사를 했다. 공연장 들어가는데 몸검색을 받아야 하는 것이 21세기 프랑스의 슬픈 풍속도다.
알함브라극장은 규모 200-300명 (2층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 정도의 작은 극장이라 새롭게 발굴된 아티스트 공연도 많이 오르므로 때묻지 않은 진지한 공연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다. 대형 공연장에 오르는 수퍼스타들의 공연 역시 훌륭하지만 때가 묻었달까 신선한 맛이 없는 것도 사실이니까.
이 공연장엔 작년 가을 우리나라 최고 거문고 연주자 중의 하나인 허윤정 명인이 무대에 오른 바 있다.
어제 공연의 테마는 "쿠르드의밤"이었는데 1부는 터어키에서 온 쿠르드족 여가수의 민요 순례였고 2부는 이란-이라크-터키에서 온 연주자들로 아루어진 앙상블의 창작/구성 작품이었다.
1부의 여가수는 목이 상했는지 원래 못하는 것인지 듣기에 안쓰러울 정도였지만 예의바른 빠리관객들 참 열심히 박수를 쳐주었다.
2부팀 역시 현재 시리아 전쟁으로 이래저래 고달프게 시달리는 쿠르드인들인지라 모이기도 쉽지 않아 그랬을까 개개인의 역량은 뛰어나 보이는데 연습량이 부족했던지 완성도가 많이 부족해 보였다.
공연은 실망이었으나 남편 최선생을 감동시킨 것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빠리의 풍부한 공연장 인프라와 훌륭한 기획들도 부럽지만 가장 부러운 것이 관객들이라 했다. 세상 어느 구석의 아무도 모를 것같은 특이한 음악을 올려도 공연장을 가득가득 채워주는 머리 희끗희끗한 관객들. 우리나라엔 그런 관객들이 없어서 좋은 공연을 못 만드는 것일까???
머리 희끗희끗한 시민님들, 드라마만 보지 말고, 술만 마시지 말고, 골프만 치지 말고 공연장도 좀 다니시지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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