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2일
아프리카에도 문화가 있어요? 하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라면 피골이 상접한 어린 아이들의 이미지만 떠오른다거나 콜레라가 창궐하고 에이즈와 말라리아로 맥없이 목숨을 잃는 사람들만 있는 곳이라고 믿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도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고 가난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불행해 보이지 않으며 엄연히 위엄있는 인격들이 있는 곳이다. 다만 타고난 천성들이 욕심이 없고 아등바등할 줄 몰라서 근세 이후 내내 못됀 문명인들에게 시달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지금 묵고 있는 강변도시 쎄구의 전통호텔 주인장 아니쎄는 쎄구에서 태어나 자라서 이 곳에서 대학을 마치고 줄곧 여기서만 살고 있는, 어떻게 보면 촌놈이다. 그런 아프리카 촌놈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 수준은 웬만한 유럽인들보다 앞서 있어서 놀랍다. 물론 프랑스여인과 결혼하여 선진 문물을 접해서 그렇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인식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건 아니잖은가.
그는 호텔 건축을 전통 양식의 흙집으로 지은 것 뿐만 아니라 (그래서 뜨거운 한낮에도 방 안에만 들어서면 서늘하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채소는 텃밭에서 기르고 돼지도 자신의 농장에서 기른 것을 공급하며 호텔 인테리어나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모든 집기 등도 지역민이 만드는 것들을 사용한다.
호텔 운영 뿐 아니라 그는 서아프리카 지역에 수천 년 전부터 세습되는 전통예인집단 그리오(griot) 가문의 자녀들로만 구성된 전통음악 밴드를 매니지먼트 하고 있다. 이 그룹이 오늘 저녁 호텔 테라스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고 하여 기대하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아니쎄는 엄청난 음반 콜렉터이다. 말리의 전통음악과 민속음악 LP와 유성기음반 수 천 장을 모아놓았다. 여기는 벼룩시장도 없고 헌책방도 헌음반 가게도 없을텐데 어떻게 구하느냐 물었더니 골동품상들이 쓰는 방식인 시골마을에 들어가 자식들도 싫다하니 버리지도 어쩌지도 못하는 음반들을 모았다고 한다.
세계 어딜 가나 젊은이들은 서양의 팝문화에 열광하고 있는데 이제 갓 마흔 된다는 아프리카의 젊은이가 일찌감치 전통문화의 가치에 주목한 점이 놀랍다. 최선생도 말리 음악이라면 눈에 띄는대로 구매를 했고 꽤 안다고 믿고 있는데 아니쎄의 내공에는 역부족이다.
말리에는 수 십 년 동안 전통/민속음악 베이스의 음악이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여 엄청난 숫자의 뮤지션들이 있었고 발표된 음반들도 많다. 아니쎄의 메인 아카이브는 살림집에 있다는데 호텔 구석방에도 미처 정리해두지 못한 음반들이 수 백 장 보관되어 있어 구경을 하고 호텔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음악을 듣고 음악 얘기를 한다.
여기 아프리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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