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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아프리카 - 말리

말리 - 생애 최초로 만난 그리오(griot)

2017년 2월 13일

서아프리카 지역엔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일정 부분 남아있다. 그 가운데 마을의 통과의례 의식이 있을 때 서사시를 읊거나 축원덕담을 해주거나 여흥을 담당하는 그리오(griot)란 계급이 있다. 이들의 직업은 세습되며 기능은 구전으로 전승된다. 

이들은 스스로를 젤리 혹은 잘리 등 지역마다 나라마다 다른 명칭으로 부르는데 말리에선 주로 젤리라고 부른다. 그리오란 용어는 프랑스인들이 만들어낸 용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는 그들과 얘기하면서 늘 젤리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국제적으로 알려진 공식명칭은 그리오이니 그렇게 부르겠다. 

우리나라의 무당은 축원덕담도 하고 노래도 춤도 기예도 모두 다 할 줄 알아야 하는 반면 그리오들은 말을 잘 하는 이는 축원덕담을 담당하고, 노래를 잘 하는 이는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잘 다루는 이는 음악을 맡는 식으로 각자 자기가 잘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오의 자녀들은 갓난쟁이 때부터 부모를 따라 잔치판 행사판을 다니다 보니 일찌감치 악가무에 능하게 되어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서아프리카의 뮤지션 가운데는 그리오 출신들이 매우 많다. 1998 프랑스월드컵 개막식 축하공연을 한 월드뮤직계의 수퍼스타 유쑨두도 외가가 그리오이며 2002 한일월드컵 개막경기 프랑스와 세네갈전에 세네갈 국가를 부른 가수 바바말도 그리오 태생이다.

이처럼 아프리카 음악에서 그리오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만큼 중요한데 전통 공동체가 급격히 와해되고 있는 요즘에도 여전히 그 계습이 세습되고 있는지 그들의 신분에 변화가 있는지 등 궁금한 게 참 많았던지라 우리는 적극적으로 그들을 만날 방도를 찾고 있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쎄구의 호텔 주인 아니쎄가 자신의 밴드 멤버 중에 압둘라예를 가이드 격으로 소개해 주었다. 밴드 맴버들도 전부 그리오 출신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경륜이 많은 그리오를 만나고 싶었다. 

호텔로 찾아 온 압둘라예는 잘 아는 그리오들이 많으니 오늘 만나볼 수 있는 이들이 여럿 있다며 당장 떠나자 하여 길을 나섰는데 자기는 스쿠터를 타고 왔으니 우리더러는 택시를 타고 첫번째 장소로 오라는 것이었다. 최선생이 스쿠터를 하나 빌려달라고 하자 어디론가 연락하더니 마침내 청년 하나가 스쿠터를 가지고 왔는데 우리는 직접 운전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압둘라예는 기사까지 포함한 임대를 생각했던 모양이다. 압둘라예의 불어가 좀 짧아서 잘못 이해했던 것인데 오히려 잘 된 셈이었다. 

하여 최선생은 압둘라예의 뒤에 타고 나는 새로 온 청년의 뒤에 타고 한 대당 하루 5000프랑을 주기로 합의하고 그리오들을 만나러 떠났다. 알고보니 내가 탄 스쿠터의 운전수 빠뿌 역시 그리오였고 첫번째로 만나 노래를 해 준 그리오 아주머니의 아들이었다. 

우리가 말리 음악을 들어 온 지난 20여 년간 그토록 만나보고 싶었던 그리오들을 만나러 그리오가 운전하는 스쿠터를 타고 이마을 저마을 누비고 다니게 된 것이 꿈이런가 생시런가 싶었다. 

빠뿌의 스쿠터를 타고 그리오 소리꾼을 만나러 가는 길, 먼지가 너무 많이 날려 스카프로 복면을 했다


처음으로 만난 현역 그리오 아주머니, 즉 빠뿌의 어머니는 우리가 마당에 들어섰을 때 저녁 준비를 하던 중이었는지 바께스에 담긴 감자를 깎고 있었다. 미리 연락을 받았을텐데도 폼잡고 기다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집안 일을 하고 계셔서 그리오도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녀는 노래하는 그리오였다. 우리가 온 이유를 설명하자 감자 바께스를 한 옆으로 치우더니 바로 노래가 쓰윽 나온다. 평생을 해오던 일이니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자 빠뿌가 타마니라는 조그만 타악기를 옆구리에 끼고 장단을 맞추고, 그 옆에 앉아 며느리의 머리를 땋고있던 아주머니의 여동생과 며느리가 자연스럽게 코러스를 넣는다. 그들의 코러스가 듣기 좋아서 최선생이 좀 더 큰 소리로 본격적으로 코러스를 넣어달라고 부탁했는데도 머리 땋는 일을 중단하지는 않고 목소리만 높인다. 

최선생이 비디오카메라로 녹화를 하고 내가 커다란 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하니 좀 더 멋있게 보이고 싶었는지 서너 곡 부르고 나서는 방 안에 들어가 화사한 흰색 원피스에 빨간 머릿 수건으로 차려입고 나오신다. 그리고는 박으로 만든 타악기 꺌바스를 세팅하고 직접 장단을 치며 노래를 불러주셨다. 

나중에 쎄구와 젠네와 바마코에서 서너 번의 결혼식을 구경하며 많은 그리오들을 만났지만 그녀가 가장 때묻지 않은 그리오였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현장에서 만난 그리오들은 대체로 넉살이 좋고 거침없는 성격들이어서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마이무나 여사와 타마니를 치며 반주하는 빠뿌


우리는 한국에서 준비해 온 선물을 드리고 그녀의 집에서 나와 소꾸를 연주한다는 어느 그리오의 집으로 갔더니 이웃 마을 신년축제에 연주하러 갔다 하여 거기까지 쫓아가기도 하고 서사시를 폼나게 읊는 아저씨 그리오는 조용한 녹음 장소를 찾아 동네 사진관 스튜디오를 빌리기도 했다. 

그리오를 찾아 쎄구를 동서남북으로 누비고 다니는 중에 점심 때가 되었는데 우리 가이드 압둘라예는 어느 틈에 자신의 집에 연락을 해두었는지 그의 집에서 점심을 먹고 가자고 하여 그의 집도 구경하게 되었다. 

총각인줄 알았던 그는 아이가 셋이나 되는 가장이었다. 그의 집은 아무것도 없는 휑뎅그레한 마당의 한 쪽에 시멘트블록으로 대충 지은 방 하나 부엌 하나의 두 칸짜리 안채와 대각선쪽 구석에 한 칸 짜리 별채가 있을 뿐 마당에도 집 안에도 침대를 빼고는 가구라 부를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 가난한 살림살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귀여웠고 미인이라 불릴만한 그의 아내는 명랑했다. 다들 비슷비슷하게 살기 때문에 누추한 살림살이에 불행을 느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차려내 온 점심은 수수와 기장의 중간쯤 되는 곡식을 꾸스꾸스처럼 익힌 것에 닭고기가 들어간 소스를 얹어먹는 것이었다. 말리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음식은 세숫대야같이 생긴 그릇에 담아 마당의 흙바닥에 그냥 내려놓으면 모두들 둘러앉아 손으로 먹는다.

원래 밥보다 꾸스꾸스를 더 좋아하는 나는 이 식사를 말리에서 잘 먹은 식사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다만 쌀밥도 아닌 꾸스꾸스밥을 손으로 먹기란 참으로 난감해서 반은 바닥에 흘려야 했지만...

그렇게나 만나보고 싶었던 그리오를 한꺼번에 우루루 만나게 된 감격스러운 날이었지만 두번째 세번째 만난 연주자들이 연주하기 전에 얼마 줄 것이냐고 돈얘기부터 하는 바람에 김이 좀 샜다. 그러나 이들 직업 자체가 늘 축원덕담이나 예능을 제공하고 받는 돈으로 먹고사는 것임을 감안하면 그다지 실망할 일도 아니다. 그들에겐 매우 자연스런 흥정일 터이니까. 

깜깜해질 때까지 그리오를 찾아다니는 순례를 끝내고 일과를 마칠 무렵 압둘라예와 빠뿌는 우리가 원한다면 다음날도 더 많은 그리오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일대일로 만나는 것보다 의례 현장에서 만나보고 싶다 했더니 사흘 후 이웃 마을 결혼식에 그들이 연주하러 가는데 따라가면 많은 그리오들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사흘 후 결혼식장 가는 길에 우리를 데리러 오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결혼식 얘기는 다음 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