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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아프리카 - 말리

말리 - 노는 듯이 일하고 일하면서 노는 도공 아낙네들

2017년 2월 22일

아직도 끼니때마다 방아를 찧어 밥을 해먹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농사도 직접 짓는다. 이 동네 여자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물을 길어다 놓고 나무를 하고 아침밥 지을 곡식을 찧는다. 

마을에는 군데군데 크고 작은 절구와 공이들을 준비해 두어 누구든 자기 곡식을 들고와 찧어가지고 간다. 하루치를 미리 다 찧어놓는 아낙네도 있지만 끼니끼니 먹을만큼 찧는 아낙들도 있어 마을엔 왼종일 방아 찧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곤 밭일도 해야하고 틈틈이 실 잣는 일도 해야 한다. 다행이도 베짜는 일은 남자들이 한다. 고된 일상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 여인들의 삶이 불행할 것이라고 함부로 예단해선 안된다. 어느 집이나 비슷하게 살기 때문에 자기만 힘든 것이 아니므로 남들보다 불행하다 느끼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노동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물길러 가는 것도, 나무하러 가는 것도, 방아를 찧는 것도, 실을 잣는 것도 언제나 함께한다. 노는 듯이 일하고 일하면서 논다. 

가난한 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더 높다고들 하는데 공동체가 살아있는 진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더 높다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 일하면서 놀고, 노는듯이 일하며 즐거워하는, 

 

도공은 말리의 남동쪽 부르키나파소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다. 화산이 만들어낸 독특한 지형으로 유명하다. 100m 높이의 절벽이 무려 195km나 이어지는데 절벽 아래 평원에 수 십 개의 마을이 있고 절벽 위 고원에도 수 십 개의 마을이 있다. 평원은 들이 넓지만 날이 덥고 고원은 전망이 좋고 시원하지만 들이 좁다. 

이 곳을 다니다 보면 방아찧는 아낙네들을 만나지 않을 수가 없다. 조금 너르다 싶은 곳엔 반드시 절구터가 있기 때문이다. 아낙네들은 각자 자기 곡식을 찧는데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박자를 딱딱 맞추어 찧는다. 자신도 모르게 옆 사람과 같은 속도로 찧게 되기 때문이다. 급한 마음에 더 빨리 찧고 싶거나 팔 아프다고 더 느리게 찧으려해도 그 불협 장단이 본능적으로 불편할 것이다. 때로는 모녀지간이나 자매지간의 여자들이 한 절구에 두엇이 함께 찧기도 하는데 그럴 때 절구공이가 부딪히지 않으려면 박자가 딱딱 맞아야 한다. 

노동요 전문가인 최선생, 그들에게 여럿이 함께 찧으며 노래를 불러보라 주문하니 그들도 오랫만에 불러보는 노래인지라 매우 재미있어 하며 어렸을 때부터 절구질하며 배워온 모든 기술을 다 보여준다. 절구공이를 던졌다 받으며 그 틈에 손뼉을 짝짝 치기도 하고 절구질에 참여하지 않는 아낙은 공이를 눞혀 절구 가장자리를 탁탁 치며 장단을 넣기도 하는 등 어찌나 재미나게 노는지 우리가 그런 판을 벌일 때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구경을 한다. 

트레킹을 끝내고 어느 마을 민박집에서 저녁을 먹고 깜깜해진녁에나 자려고 누웠는데 어느 집에선가 그제서야 방아 찧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듣던 최선생, "아이구 이제 방아 찧어 언제 밥을 해먹노" 하더니 제주 지방 민요를 하나 읊는다. 

"이여 방애 혼저 찧어 저냑이나 볽은제 허자
본디 저냑 늦어랜 집에 오늘이옌 볽으라 허냐"

어느 아낙이 "이 방아를 얼른 찧어 저녁이나 밝을 때 하자" 고 노래하니, 함께 방아 찧던 아낙이 "본래 저녁 늦는 집이 오늘인들 밝을 때 할까" 라고 화답한다는 말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여자가 게을러서 그런 거냐고 물으니 그게 아니라 밭일이 늦어져 늘 어두워져서야 집에 들어오는 아낙네의 안타까운 심정을 그린 것이라 한다.

사는 곳은 달라도 사람들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