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8일
말리 남동쪽 끝, 외따로 떨어져 아직도 전통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는 도공지역까지 무사히 왔다. 오는 길에 위험할 수도 있는 지역을 거쳐야 했지만 이곳은 아직까지 어떤 위험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던 곳이라 한다.
남편 최선생은 아프리카에 올 때마다 톡톡히 신고식을 치른다. 16년 전 모로코에선 아틀라스산맥 트레킹하며 감기몸살을 앓아 마라케시의 메디나에 도착하자마자 어렵게 쌀을 구해 죽을 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도 죽을 쑤었다.
원인은 도공에서 첫번째로 들른 마을에서 며칠 후에 있을 마을축제용으로 빚어 둔 생맥주를 두 바가지나 마신 게 탈이 났다. 자동차라고는 없는 드넓은 도공지역 트레킹을 하는 동안은 어떻게든 걸어서 이동을 해야 하니 힘들어 하면서도 계속 먹고 걷고 하길래 그다지 심각한 줄 몰랐다. 그런데 문명세계로 돌아오니 본격적으로 증상을 보이는데도 약을 안 먹고 굶으며 버티겠다기에 작은 시골 호텔에서 이틀간 쉬어가기로 했다.
아무것도 못 먹으니 게토레이를 제조하여 마시겠다며 설탕과 소금이 필요하단다. 죽염은 늘 가지고 다니지만 설탕이 없어서 사러갈까 하다가 호텔 레스토랑 테이블에서 각설탕 몇 개를 슬쩍해 갖다주었더니 생수에다 설탕과 죽염을 섞어 게토레이 비슷하게 만들었다.
자가제조 게토레이를 마시며 하루쯤 굶으니 속은 편해졌다는데 다음 도시로 이동하려면 뭐라도 열량이 필요하겠기에 시장에 나가서 제일 큰 식품점을 찾아가 제일 비싼 쌀을 달래서 호텔 레스토랑 주방으로 갔다. 사정을 설명하니 남비도 하나 빌려주고 가스불도 쓰게 해주어 흰죽을 끓이는데 쌀이 어찌나 단단한지 물을 계속 첨가하며 한 시간은 저었나보다. 마침내 흰죽 비스무리한 모양과 맛을 내는 죽이 되어 갖다주니 맛있다며 그릇을 비웠다.
게토레이가 효과가 있었던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죽을 먹고나서 설사가 멈추었고 오늘 아침 다음 도시로 올 수 있었다. 다음 여행부터는 우리쌀과 유기농설탕도 꼭 챙겨넣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가 묵었던 곳은 가이드북에는 이름만 나오는 작은 도시 반디아가라이다. 그 곳에서 제일 좋은 호텔, 시설은 딱 필요한 만큼만 있는 소박한 호텔이지만 적도의 햇살 덕분에 마당만은 프로방스 부럽지 않은 곳이었다.
덕분에 잘 쉬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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