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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아프리카 - 모로코

모로코 - 파란 도시 셰프샤우엔

2017년 5월 7일

카스바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도시 주변

 

여행 떠난지 만 3개월이 넘어가면서 에너지 창고가 바닥이 났는지 한 끼 굶으면 바로 체력이 확 떨어지고 장거리 밤버스를 타고나면 겉으로는 멀쩡한데 내장이나 피부같은 몸의 어느 한 조직에 이상 신호가 온다.

그래서 원래도 천천히 다니지만 반나절 이내로 이동할 수 있는 행선지로 구간을 끊어서 더욱 천천히 다니고 있다. 지금은 공연 보러 탕헤르에 올라간 김에 모로코 북쪽 지중해 주변 도시들 순례 중이다.

오늘 소개할 곳은 셰프샤우엔(Chefchaouen)이란 작은 도시인데 모든 집의 담벼락을 파란색으로 칠해서 유명해진 관광지다.

파란색을 칠하는 것이 무슨 역사적인 사연이 있을 줄 알았으나 어디에도 그런 설명은 없고 193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고만 하니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은데, 그것이 테마가 되어 모로코 국내 여행객들도 단체로 몰려오는 유명 관광지가 된 것이다.

내가 보기엔 유명해지기 전에는 몇몇, 그러나 보통 보다는 좀 많은 수의 집들이 담장을 파랗게 칠했을 뿐이었을 듯한데 그것으로 유명해진 후, 메디나 안에 있는 모든 집들의 담장이나, 심지어는 골목바닥까지 파란색으로 칠해놓아 심히 과잉이란 느낌이 든다.

온동네가 모두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상점이 되어가고 있다.


전통적으로 모로코는 흙이나 돌로 집을 짓기 때문에 돌집 아니면 흙색이 원칙이나 이 도시는 오래 전부터 하얀 칠을 했었고 1930년대부터 파란칠을 하기 시작했단다.

산 속에 있는 이 작은 도시가 하얀 칠을 하게된 까닭은 이들 조상들이 15세기 말 스페인의 마지막 아랍왕조(알함브라궁전을 지은 나스리드 왕조)가 퇴각할 때 무슬림 주민들과 그들 옆에서 공생하던 유태인들이 같이 이 곳에 와서 터전을 잡았기 때문에 (유태인들은 이스라엘 건국 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자신들이 살던 고향 안달루시아에서처럼 벽에 흰 칠을 했을 것이다.

이들이 지브롤터를 건너와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깊은 산 속에 자리잡은 것은 혹시라도 기독교도들이 북아프리카까지 침략해올까 두려워 멀리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렇게 와서는 이 도시에서 문 닫아걸고 500여년간 옹기종기 잘 살았던지라 1920년에 들어온 스페인 군대가 이곳 유대인들이 중세 시절의 카스티야 (마드리드 주변 지방) 언어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늘 무슬림 주변에서 잘 먹고 살았고 스페인에서도 가톨릭으로부터 핍박 받을 때마다 무슬림들이 보호해 주었다는데 20세기 이스라엘 건국 후부터는 무슬림들에게 가장 각을 세우는 것이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에게 배후조종(?) 당하는 서구 국가들인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다.

셰프샤우셴은 모로코 내국인들이 더 많이 찾는 관광지가 되어 주말에는 좁은 골목길이 수 백 미터나 줄을 서서 지나다녀야 할 정도로 붐비고, 메디나 안의 모든 주민이 식당이나 가게 주인이 되어 버려 고즈넉하게 정취를 즐기기는 어려운, 관광으로 소비되는 도시가 되어있어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이런 관광지는 반나절만 돌아다니면 놀이동산처럼 피로 수치가 올라가는 곳이라 대낮에 도착한 우리는 점심만 먹고 바로 되돌아 나오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호텔예약사이트에서 취소 불가능한 조건으로 예약을 해버려 눈물을 머금고 하룻밤 자고 다음날 새벽 다음 행선지로 떠났다.

그러나 햇살이 좋아 사진은 그럴 듯하다.

액센트로 문 정도만 파랗게 칠한 집은 참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