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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아프리카 - 모로코

모로코 - 베르베르인들의 마을잔치2

2017년 4월

축제는 남자들의 아카펠라로 서막을 연다.

이 동네 축제는 원래 산중턱의 구도심 조금 넓은 골목길에서 벌인다는데 그 곳은 어른 오십 명 정도 들어서면 빽빽할 좁은 공간이라 마을 사람들은 주변 집들의 지붕에 올라가 구경도 하고 손뼉장단도 치고 하는 것이란다. 동네가 워낙 가파른 경사지에 형성되다보니 그나마 그 곳이 제일 넓은 곳이란다.

그러나 이번 축제는 모함메드네 저택 바깥마당에서 개최하기로 했더니 새로운 장소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며 모함메드는 아주 만족스러워 했다. 그 마당은 이삼백 평 정도 될 것 같은데 주민들 3-4백 명은 모였는데도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저녁상을 물리고 한쪽에선 설겆이를 하고 한 쪽에선 여자들 앉을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전등을 설치하느라 분주하다. 열 시쯤 되자 전통옷을 차려입은 남자들이 먼저 모여든다.

딸룬트 혹은 반디르라 부르는 북을 들고 온 남자들이 마당 한켠에 장작불을 지피길래 춥지도 않은데 웬 불인가 했더니 늘어진 북의 가죽을 탱탱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이 불은 축제가 끝날 때까지 피워두고 쉴 때마다 가서 불을 쪼이며 북소리를 짱짱하게 유지한다.

좀 있으니 여자들도 하나둘 들어와 남자들 맞은 편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남자 소리꾼 열댓 명이 벽 앞에 일렬로 서더니 대표 소리꾼이 그 앞에서 천천히 왔다갔다 하며 선창을 하면 남자 소리꾼들이 그 소리를 받는 형식으로 노래를 하는데 가사는 선창하는 소리꾼이 즉석에서 지어 부르는 것으로 알아들을 순 없지만 오늘 이 축제가 어떤 연유로 벌어지는 것인지 고하는 것이었을 게다.

악기 반주 없이 부르는 남자들의 노래소리는 언제 들어도 참 좋다. 두어 곡을 그렇게 부르고 나자 대여섯 명의 북반주팀들이 장단을 넣고 남자들은 율동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전통 두루마기 차림의 남자들이 일렬로 서서 노래하며 추는 그 춤도 참 보기에 좋다.

이삼십분간 남자들의 노래가 이어진 후 어느 순간 여자들이 남자들 맞은 편에 일렬로 서더니 남자들이 한 소절씩 부를 때마다 맞받아 노래를 한다. 여자들의 노래는 매우 고음으로 제창을 하는데 아마도 그 소리는 산이 가로막지 않는다면 인근 십 리 정도까지는 너끈히 들리지 않을까 싶다.

남자들의 의례가 끝나면 여자들의 춤과 노래가 이어지고 남자들과 함께 잠시 조고받기도 하지만 무대는 결국 여자들의 차지가 된다.

 

남녀혼성 합창이 몇 곡 이어진 후 어느 순간 남자들은 쓰윽 빠지고 무대는 완전히 여자들이 장악한다. 물론 남자 고수들은 계속해서 장단을 쳐준다.

여자들끼리 부르는 노래는 둥글게 원을 만들어 조금씩 스텝을 밟으며 오른쪽으로 돌면서 부르는데 두 편으로 갈라 주고받는 식으로 부른다. 노래마다 곡조는 거의 비슷한 것이지만 가사는 나이 지긋한 원로 아주머니들이 즉석에서 만들어 소리꾼들에게 일러주면 같은 구절을 계속 반복해서 부른다.

이게 볼 때는 쉬워 보였지만 어느 아주머니의 제안으로 그녀의 집에 가서 전통옷과 장식으로 갈아입고 나도 그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었는데 상체를 떨면서 스텝을 밟으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채 그들이 반복해서 부르는 가사를 따라부르니 그들은 매우 흡족해 했다. 그러고나니 다음날부턴 마을에 나가면 모두들 아는 척 해주고 친근한 표정들을 지어주었다.

처음엔 열댓명이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던 대열이 나중엔 백 명도 넘게 나와서 함께 하니 그 넓은 마당이 좁아 제대로 대열을 만들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열 시에 시작한 축제는 후반 여자들 무대가 되자 밤이 깊어갈수록 그 열기가 점점 더해가는데 다음날 일하러 가야하는 남자들이 두 시쯤에 일부러 끝내지 않았더라면 밤을 샐 기세였다.

그날 축제의 백미는 더 놀고 싶은데 억지로 끝내고 떠나던 여자들이 골목길에서 남자들에게서 북을 빼앗아 직접 두드리면서 한 이삼십 분 더 앙팡지게 놀던 모습이다. 달빛어린 가파른 경사의 골목길에서 흉내내기조차 어려운 고음으로 내지르는 노래와 혀를 굴려 내는 자가리뜨와 손뼉소리, 그 장면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여자 구경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