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땀 흘린 후 마시는 맥주 첫 모금은 첫 키스의 맛이라는데 여행지의 첫 경험도 비슷한 듯하다. 감동적이었던 여행지를 두 번째 찾았을 때 첫번째만큼 감동을 느끼기는 정말 어렵다.
16년만에 다시 찾은 마라케시도 그랬다. 당시는 첫 이슬람 문화권 여행이어서 모든 게 새로왔다. 카사블랑카에서 기차를 타고 마라케시역에 내렸을 때, 찬란하던 햇살 하며 야자나무 가로수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분홍색 담장들과 메디나의 전통 시장 수크(souk)의 꼬불꼬불한 골목길들이 가슴을 뛰게 했고, 초저녁 젬마엘프나 광장의 포장마차들이 피워대는 꼬치구이 연기들이 알라딘램프의 연기라도 되는 것마냥 이국적인 풍물에 한껏 취했더랬다.
그러나 다시 본 젬마엘프나 광장은 너무 해끔하게 정비되어 있고 포장마차들은 똑같은 천막을 뒤집어 쓰고 똑같은 조명기구를 달고 있어 신도시에 새로 조성된 식당가처럼 변해있었다.
식당들은 메뉴의 평준화가 이루어졌다. 꾸스꾸스와 따진은 구색맞추기로 끼워넣고는 약속이나 한듯이 샐러드 피자 파스타 스테이크 크레쁘 등을 팔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볼거리는 색다른 것을 좋아하면서도 입맛만은 늘 먹던 음식을 좋아한다. 우리는 수크의 뒷골목을 기웃거린 끝에 현지 상인들이 즐겨찾는 간이식당을 찾아내어 값싸고 진국인 음식을 사먹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케시는 여전히 매력적인 곳이다. 이슬람문화권을 여행해보지 않으신 분들은 '맥주 첫 모금' 혹은 '첫 키스'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율배반적이게도 관광지화된 곳일수록 숙소들은 경쟁이 심해서 가격대비 시설 좋은 곳들이 많다. 덕분에 우리처럼 거지꼴을 하고 다니던 장기 배낭여행자들이 한 며칠 머물며 밀린 빨래도 하고 쉬어가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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