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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아프리카 - 모로코

모로코 - 하이아틀라스산맥의 최고봉 투브칼

2017년 4월

툽칼봉 올라가는 초입의 골짜기

모로코에 왔으니 하이아틀라스산맥의 최고봉 투브갈(4,167m)을 찍어야 할 것같았다. 마침 우리가 묵고 있는 이믈릴의 숙소 아들들이 모두 산악 가이드들이다. 그 가운데 불어를 잘 하는 맏아들 후세인과 함께 오르기로 했는데 삶은지 오래된 계란을 잘못 먹고 배탈이 난 우리는 떠나기로 한 날 떠나지를 못했다. 다음날 후세인의 동생 하미드를 가이드 삼아 노새 한마리에다 짐을 싣고 해발 3,200m에 있는 대피소로 올라갔다. 후세인은 그전날 프랑스 트레커들과 올라와서 오늘 새벽에 이미 툽칼봉을 올랐다 내려와 중도에 우리를 만나 함께 다시 올라가고 동생 하미드가 프랑스 팀을 인계받아 데리고 내려갔다.

대피소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안 들어가는 빵을 차와 함께 꾸역꾸역 뱃속에 밀어넣고 네 시 삼십 분쯤 대피소에서 나와 오들오들 떨며 아이젠을 신고 랜턴을 밝히고 출발을 했다. 고도 1000미터를 올려야 하는데 보통 세 시간쯤 걸린다 했다.

우리보다 더 부지런한 팀은 벌써 저만치 불을 밝히며 가고 있고 하늘에는 별이 총총한데 사하라 사막의 따끈한 모래밭에 누워 보던 바로 그 별들이건만 춥고 배고프고 갈길은 멀기만 하니 그 별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품이 큰 산의 정상은 길은 멀지언정 경사가 완만한 산들도 있는데 이 툽칼봉은 아주 젊은 산인지 골짜기에서 능선 올라설 때까지의 경사가 어찌나 심한지 길을 지그재그로 뚫어놓았건만 심한 곳은 경사 60도쯤 되는 듯하다. 게다가 골짜기라 바람은 또 어찌나 세차게 부는지 앞서가는 우리 가이드 후세인도 바람이 휘몰아칠 때마다 몸을 돌려 숙인채 한참을 기다린다.

1/3쯤이나 왔을라나, 초반에 우리를 추월해 씩씩하게 올라가던 서양인 부부가 있었는데 부인이 중도작파 하고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뭔 영화를 보겠다고 비싼 돈 내고 이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 라다크 잔스카르에서 고산증 때문에 일주일만에 중도작파한 것을 두고 아직도 나를 의지박약이라 비난하는 최선생을 생각하면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것보다도 능선에 올라설 때쯤이거나 정상에 다다랐을 때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팀 서너 팀이 앞질러 가니 괜히 기분이 언짢다. 나이 들면 자꾸만 옛날 얘기 하게 된다더니 나도 그렇게 된다. 예전에 산행할 땐 누가 나를 추월하는 꼴을 못봤다. 아니 꼴을 못 봐서가 아니라 그냥 걷다보면 저절로 남을 추월하게 되는 것이었다. 다른 스포츠는 아무것도 못 하는데 걷는 거 하나는 정말 잘했다. 그러다 중년 이후, 주말에도 집에서 회삿일 하는 한심한 인생을 살게 되면서 산을 멀리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앞서가는 가이드가 10미터마다 서서 기다려줘야 하는 한심한 신세가 된 것이다.

올라가는 세 시간 동안 3초면 꺼내서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아이폰이 파카 주머니에 들어 있는데도 꺼내기가 귀찮아, 올라가며 찍은 사진은 단 하나도 없어 최선생이 찍은 사진을 빌려왔다. 비슷한 형편이었을텐데도 귀찮음을 마다않고 부지런히 그 무거운 카메라로 셔터를 눌러 준 최선생에게 감사한다. 덕분에 오랜만에 내 모습 들어간 사진이 있다.

산악 가이드들이 만들어주는 베르베르 샐러드와 모로코 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