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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아프리카 - 모로코

모로코 - 모로코의 주인은 베르베르인인가 아랍인인가?

2017년 4월

왼쪽부터 모하메드의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모하메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옷깃을 스칠 정도의 작은 인연이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오히려 더 단단한 인연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인연 덕분에 우리는 모로코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놀라운 경험을 선사해준 모함메드네 가족과 그의 고향마을 사람들을 소개한다.

2016년 전주소리축제에서 프랑스 월드뮤직 그룹 로조의 워크샵 사회를 보게 되었는데 그룹의 두 여자 가수 나디아와 미나 자매가 알제리 원주민 카빌족이라기에 (프랑스 축구 대표 선수였던 지네딘 지단도 이 카빌족이다) 서북아프리카 원주민 뮤지션 친구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그룹의 리더 드니가 모로코 원주민 아마지흐 문화를 연구하는 프랑스의 인종학자 장끌로드 띠에리 교수를 소개해 주었고 장끌로드는 아마지그 민요 가수 레흐슨 잘라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러나 레흐슨 잘라는 불어도 영어도 못 하는 분이라 그의 둘째 아들 모함메드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일정을 논의하게 되었다.

모함메드는 마라케시의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하고 중등 교사 임용고시를 기다리고 있는 스물일곱살 청년이다. 그는 자신이 아마지흐라는 것에 대단히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소수이면서 모로코의 부와 요직을 독차지하는 아랍인들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다.

모리타니에서 서사하라를 거쳐 모로코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시외버스를 타고 모함메드네 집이 있는 작은 도시 이민따눗으로 찾아갔다. 터미날에 마중나온 모함메드를 따라 그의 집에 갔더니 부모님과 할머니와, 8남매 중 도시로 나가있는 자식들 빼고 4남매가 함께 사는 중산층 가정이었다.

인자한 할머니는 아침마다 전통빵을 굽고 젊었을 땐 꽤나 예뻤을 엄마는 조용조용 집안일을 도맡는데 요리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더 묵었다 가라고 붙잡길래 못이기는 척 하고 예정보다 이틀이나 더 묵으며 다양한 아마지그 요리를 맛 볼 수 있었다.

모함메드의 아버지 레흐슨은 우리로 치면 김세레나같은 민요풍 가요 가수로 음반을 여섯 장이나 낸 인기가수였으나 10여 년 전 은퇴하셨다. 얼마 전 수술을 해서 병색이 도는 얼굴임에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는 걸 보면 과거에 대단한 꽃미남이었을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레흐슨의 아버지이자 모함메드의 할아버지는 70년대 초에 프랑스로 건너가 광부로 일하다가 나중에 네덜란드 철도청에서 근무하다 금의환향 했는데 노후를 별로 누리지도 못하고 40대 후반에 돌아가셨다. 유럽에서 벌어온 돈도 큰 돈이었지만 돌아가신 후 할머니에게 지금까지도 나오는 네덜란드 정부 연금이 모로코 시골 살림에는 매우 큰 돈이라 레흐슨네 가족은 지금 살고있는 도시 이민따눗에서는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고 고향마을 따구닛에서는 가장 성공한 집안으로 알려진 듯하다.

타구닛마을 


할아버지 생전에 해외에서 고생하며 벌어온 돈으로 고향마을에서 많은 인심을 베풀었고, 아들 레흐슨 역시 가수활동으로 고향마을을 빛낸 인물인지라 모함메드와 함께 따구닛 마을에 도착한 우리는 거의 칙사 대접을 받았다. 게다가 우리는 이 마을에 두번째로 들어온 외국인 손님이라 했다. 첫번째 외국인 손님은 물론 장끌로드 띠에리 교수다.

우리는 레흐슨이 20년 전부터 짓고 있는, 마을에서 가장 큰 저택의 한 방에 짐을 풀었는데 도착하던 날 저녁부터 마을에서 음악 꽤나 한다는 장정들이 낮이나 밤이나 와서 뚱땅거리고 춤을 추고 하는데 나중에는 악기를 아예 우리 방에다 갖다놓고는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둘쨋날부턴 이런저런 기회에 우리를 만났던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우리들의 끼니를 책임져 주었는데 핫산아저씨네를 시작으로 집집마다 다른 모양 다른 맛의 따진과 꾸스꾸스를 실컫 맛볼 수 있었다. 나흘째인 마지막날엔 서로 초대를 하는 바람에 점심을 세 번이나 먹어야 했다.

마지막 날 저녁엔 두 번째 축제가 벌어지는 날이라 작전 회의를 하느라 주요 뮤지션들이 다 우리방에 모여 논의하다보니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 때 이다르 아저씨가 슬그머니 나가며 이들이 저녁에 주로 먹는 흰죽을 쑤어 오겠다고 하자, 핫산아저씨가 빵과 잼을 가져오겠다며 나가고, 레흐슨 아저씨는 버터를 가져오겠다며 일어서고, 이름 모르는 총각 하나는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쟁반에다 차주전자와 잔까지 챙겨와서 모두 다 같이 훌륭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타구닛마을의 밴드 멤버들, 틈만 나면 우리방에 와서 풍악을 울린다.